다음 세대를 품기위한 교회들의 몸부림 | 박은호 | 2016-07-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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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통해서 거침없이 기독교를 욕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제제와 통제가 없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그들의 스트레스가 맘껏 분출된다는 것이 종종 기독교가 희생양이 되어 대표로 욕을 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비판한다는 것은 관심의 또 따른 면입니다. 기독교를 지나치게 욕하는 자들을 어쩌다가 개인적으로 만나서 얘기해보면 생각보다 그리 거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나름 어른 앞에서 지킬 예의는 다 지킵니다. 그들과 개인적인 유대가 형성되면 교회에 대해 마음을 열고 예배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기독교를 욕한다고뿔 달린 마귀를 연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사랑에 굶주린, 그리고 진정한 기독교를 갈망하는 자들이 기독교를 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욕먹는 기독교는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기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정직성 문제는 비판의 단골손님이 되는 민감한 이슈입니다. 두 명의 대학생이 얘기를 나누고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옆 친구에게 볼펜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옆 친구가 빌려 주면서 “다 쓰고 나서 꼭 돌려줘! 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빌려가는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걱정마, 나 교회 안 다녀!” 왜 거기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는지는 생뚱맞지만, 그리스도인의 정직성이 얼마나 훼손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풍자적 이야기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실상 이 시대 사람들이 진심으로 갈망하는 것은 어떤 영적인 충족감입니다. 교회를 비판하지만 동시에 교회를 향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교회가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더 나아가 영적 생명력을 잃고 사람들에게 영적 충족감을 주지못할 때 그들은 눈을 다른 데로 돌립니다.
사람들의 영혼에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은 죽은 종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영혼에 만족을주지 못하는 생명 없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 한 부류가 사두개인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오직 모세 5경만 붙들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진리를 고수하기 위한 열정에서 율법을 붙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넉넉한 밥벌이를 위해 신학화시킨, 정치와시킨 편협한 율법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민감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희생적 변화를 거부했던 이들을 백성들은 거부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아이폰 5가 너무 올드하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시대가 점점 빨리 변한다는 것입니다. 대략 1977년부터 1997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보통 Y세대, N 세대라고 부릅니다. 61년에서 76년까지를 X세대 (buster)라고 합니다. 그 위 세대인 43년에서 60년까지를 베이비 부머( Baby boomer)세대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땅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세대는 아직 베이비 부머 세대입니다. 그런데 77년부터 97년 사이에 태어난 Y 세대, N 세대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세대입니다.
톰 라이너(Tom Rainer)라는 학자는 이들 세대를 ‘Bridger generation’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특징을 말합니다. 77년부터 97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의 특징은 속도감, 극심한 스트레스, 돈에 대한 집착, 결혼보다는 돈과 성공, 회의주의적 사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의외로 그들이 초자연주의적 영성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끌 만한 것과 자신들을 채워줄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은 듣는 복음만으로는 꿈쩍도 안 합니다. 이들은 봐야 합니다. 느껴야 합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고 하고 싶은 걸까요? 한 마디로 생명이 없는 종교, 생명이 없는 교회는 이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곧 이들이 미국에서 가장 큰 세대가 됩니다. 여기에는 유학생, 1.5세, 2세 청년들, 30-40대 싱글, 갓 결혼한 젊은 커플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이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그들을 품기 위해 교회가 어떤 변화를 감당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세기 교회는 유대교라는 전통의 껍질을 벗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하나님이 그 시대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성령의 바람을 타는 영적 민감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력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대의 영혼들을 얻었습니다.
반면에 변화 없이 자신들의 현상유지(status quo)만을 고수하던 사두개인들을 비롯한 당시의종교인들은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지 못했기에 생명력을 잃었고, 결국 대중까지도 잃었습니다.
교회성장학자인 로이 하니컷(Roy Honeycutt)은 급변하는 시대 속의 현대교회를 급류타기로 묘사했습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곤두박질 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습니까? 새로운 세대를 품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본질의 훼손이 아니라면 어떠한 변화에도 대응할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을 품을 수 있는 생명의 감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강단의 언어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진부한 종교적 언어로 젊은이들의 귀를 지루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쩌면 수명이 다한 오늘날 현대교회의 진부한 교회론은 성령님을 통해 해체를 요구받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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