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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 대한 기대치을 낮추세요! 박은호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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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있다면, 누군가가 못마땅하다면, 한 번 당신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내가 그 사람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 큰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기대치를 낮출 수만 있다면 인간관계 속에서 오는 많은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기대치가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죄인 된 모습 그대로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나의 지극히 부족하고 못난 모습도 용납하십니다. 과거를 전혀 따지지 않으십니다. 현재의 사는 모습 다 뜯어 고치고 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주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의 한 구절입니다( 528).

 

하나님의 기대가 높았다면 하나님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을 부르러 오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또한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할 줄 아는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 9:13).

 

그러나 하나님의 눈높이에 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믿음의 식구들이 왜 그리 눈이 높은지요?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어떤 남자가 아내에게 불만이 많았답니다. 아내가 너무 잠이 많은 겁니다. 아침마다 자는 모습을 보면서 출근을 합니다. 불만이 쌓여 나중에는 분노가 일어나고 있는데, 어느 날 옆집에 앰블런스가 것을 보았습니다. 옆집 여자가 앰블런스에 실려간 것입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여자가 너무 잠을 못 자서 불면증이 심해 몸이 감당을 못하고 실신했다는 것입니다. 이 남자가 갑자기 드는 생각이 차라리 잠이 너무 많아도 건강한 아내가 낫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다음부터는 아내에 대한 기대치를 상당히 낮추었다는 얘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와 목사님에 대해 기대치가 너무 높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분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회의(meeting)가 있을 때마다 목사와 다른 성도들을 째려보면서 모임에 참여합니다. 어떻게 교회가 그럴 수가 있어왜 그 정도밖에 못하는거야목사님은 왜 그걸 안 하시는거야…” 이런 불만들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하고, 교회들마다 세상과 다른 모습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노력하지만 그래도 교회가 천국은 아닙니다. 교회는 거룩한 모임이지만 또한 죄인들이 모이는 곳인데 사람들의 허물과 실수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모습입니다. 교회는 조금씩 변해가는 죄인의 모임일 뿐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야 일반 교인들보다 좀 더 노력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셨다는 확신을 갖고 일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백 가지 잘하다가 가지 흠이 보이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열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무엇이든 열심히 하니까 남에 대해서도 높은 기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꼭 바리새인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주일에 교회 빠진 적 거의 없구요, 십일조도 떼어먹지 않았구요, 저 인간들처럼 인테넷 음란싸이트에 들어가지고 않았구요, 겨울이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준 적도 있구요...” 그런데 결과는 나의 열심으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교회를 허물고, 하나님의 일을 그르칩니다. 열심은 겸손과 온유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더 위험한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매주(아니 매일)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수고로운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사실 설교 준비가 부담이 될 때가 많습니다. 내 스스로 너무 큰 기대를 가질 때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교인들이 다 깨달아야 할텐데…”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나에게는 모두를 변화시키고 만족시킬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은 성령으로 가슴이 뜨거워서 말씀을 조금 길게 전했습니다. 내심 많은 분들이 큰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을거야!” 이런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가 오늘 설교가 너무 길어어 졸렸어요!”라는 말을 합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험이 되고 고역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래저래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키려는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면 얼마나 설교 준비하는 것이 부담이 되겠습니까?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목사의 기대가 아니라,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제대로 알고 설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보다 나 자신의 기대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눈높이를 조금만 낮출 수 있다면 나도 편하고 성도님들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그렇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때 나도 편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습니다.

 

어제 성경공부 중에 한 자매님이 어느 선교사님의 얘기를 소개했습니다. 그 분은 창녀촌을 선교하는 분이랍니다. 매 주일마다 창녀촌을 찾아가서 많은 창녀들을 차에 싣고 교회로 온답니다. 그 여인들은 예배하는 중에 눈물이 마르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교회가 그들의 유일한 삶의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매 주 예배를 드리면서 어떤 자매들은 그 직업을 떠나기도 하고, 또 어떤 자매들은 밥을 먹어야 하기에 여전히 그 일에 종사하면서 고통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저는 그 선교사님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교사님은 몸을 팔면서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을 정죄하는 대신,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시는 심정으로 그저 그 여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안 그랬다면 어찌 그런 여인들과 함께 예배할 생각을 했겠습니까? 선교사님의 낮아진 마음과 눈이 있는 그 곳에 진정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닫고 바람직하지 않는 직업을 청산하는 일들도 생겼습니다.

 

높은 기대치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낮은 기대치를 가지고 긍휼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할 때 상대방에게서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Las Vegas Times 6월 3일자 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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