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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박은호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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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이런 글귀가 나왔습니다. “Expecting not to be treated badly just because you are a good person is like expecting the angry bull not attack you just because you are a vegetarian.” “당신이 단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이 당신을 나쁘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내가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성난 소가 당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삶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기대 또한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화가 난 소와 같은 존재와 환경이 당신을 공격해 올 때 당신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입니다

 

어려움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을 알게 됩니다. 믿음이 너무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기나 한 건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이리 일들이 안 풀리지?” 어떤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요즘은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물어봅니다. “어떻게 아는데요?” 그가 말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느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안 계신가요? 요즘은 라스베가스 하늘도 구름이 제법 있어서 해가 보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해가 안 보인다고 해가 라스베가스에서 사라진 것인가요? 해는 여전히 있습니다.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여전히 우리 삶에 간섭하십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1914년 어느 날 가슴 아픈 일을 당했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실험실이 다 타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날 다 타버린 잿더미를 걸으면서 놀랍게도 에디슨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재난에도 큰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실험상의 실패와 실수들이 다 태워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There is great value in disaster. All of our mistakes are burned up. Thank God we can start anew.” 에드슨은 인생의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 신앙인다운 멋진 반응을 한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성경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고백을 보면 주님이 함께 하시는 때가 언제입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두렵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인생의 역경과 고난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지극히 어려운 시간들을 보낸다고 해서 당신이 악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정도와 때의 차이는 있어도 재난이나 비극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도록 그 길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것 조차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의 극심한 고난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비로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등이 너무 따습고 배가 불러서는 왠만해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몸이 너무 이상해서 병원에 갔다가 의사에게 안 좋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피 검사 소견이 매우 안 좋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사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듣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의사가 시키는대로 모든 것을 잘 지켰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이 절박해지니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도 읽기 시작합니다. 교회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두달 지내자 다행이도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다시 방심하기 시작합니다. 약도 먹지 않고, 운동도 안하고, 과식하고 아무거나 막 먹습니다. 기도의 시간은 다시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성경책도 읽지 않습니다. 교회 나가는 발걸음도 뜸해졌습니다. 이 사람의 건강과 영혼은 다시 피폐해져 갑니다. 이렇게 약하고 간사한 것이 사람입니다.

 

낭만적인 장미빛 인생 속에서는 하나님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평상시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릴듯 말듯 속삭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확성기를 들고 우리 귀에 고함 치십니다. 절박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뿐 만 아니라, 하나님도 우리가 고난 중에 부르짖을 때 우리에게 더 잘 응답하십니다.

 

고난을 막 통과하고 나왔을 때가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체험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때입니다. 물론 우리가 평탄할 때도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늘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어려운 길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심을 더욱 실감나게 체험합니다(시편 23:4).

 

예수 잘 믿는다고 어려움이 덜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힘든 일이 있습니까? 난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항상 노력하는 자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나요?” 앞으로는 이런 식의 유치한 질문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파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멋지게 반응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월 17일자 지역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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