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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자신을 드러내는 건강한 사람 박은호 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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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니 사느니 늘 찡얼대는 아버지 야곱에 비해 요셉은 늘 너무 침착해 보입니다. 가끔은 요셉이 너무 강해 보여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통의 상황에서도 너무 침착하기만 한 것을 좋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완벽주의의 증상은 마음에 상처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형제들을 극적으로 만나면서 요셉의 없던 눈물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구덩이에 빠져 애걸한 이후 20년 이상 요셉이 울었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 요셉이 한 번 울기 시작하니까 방성 대곡을 합니다. 


종종 너무 완벽한 사람을 봅니다. 새벽에도 찐한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 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한 번 은혜를 받고 울기 시작하면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씁니다(?). 


울어야 상처가 회복됩니다. 상처는 삶이 풍성해지면 대부분 회복되지만, 그것이 완전한 치유는 아닙니다. 깊숙한 아픔과 상처는 눈물과 통곡을 통해서 치유됩니다. 

 

울음은 자신을 치유하며 동시에 상대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셉의 울음은 두려움에 떨던 형제들의 마음에 안심을 줍니다. 눈물은 내 영혼을 녹일 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를 풍성하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종종 목사인 제가 설교하다가 바보같이(?) 울면 성도들이 다같이 우는 것을 봅니다. 매주 울면 주책이겠지만,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울어야겠습니다.^^  


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전혀 없으십니다. 감사도 잘 표현하시고, 잘못된 것을 보면 분노하십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속을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우기 문제는 남들도 그 속을 알아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속을 보이지 않으면서 왜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불평합니다. 물론 그 불평도 속으로만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겉으론 늘 나이스해 보이는데 속으로 곪을 수 있습니다. 잘 안 될지라도 자주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보이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 분 앞에 나의 추한 모습, 약한 모습 다 드러내 놓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 또한 나를 주님 앞에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이런 찬송가 가사가 있습니다.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놓으라.” 


예배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성도의 진정한 교제는 믿음의 가족들 앞에서 내 삶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기 마음을 드러낸다고 하면서 오버하면 안 됩니다. 마음을 드러내면 자기는 시원한데 주변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자극적인 과거 얘기는 삼가해야 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폭로해서 양심의 자유를 얻으려는 이기적 모습은 안됩니다. 


적절하고 지혜롭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건강한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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